서론: 탄소중립 시대, 해상풍력과 수소가 만나다
지속적인 기후 변화와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로 인해,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 저감 기술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해상풍력’은 육상보다 안정적인 풍속과 넓은 설치 가능 지역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이 해상풍력의 전력을 활용한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즉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 기술’이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바다 위에서 생산된 전력을 현장에서 수소로 전환해 저장 및 운송함으로써, 전력 송전 손실 없이 수소라는 에너지 저장체로 직접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에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공급 불안정이 기술적 한계로 지적되었지만, 수소화 기술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산업과 정책, 투자 분야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는 2024년부터 실증 단계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2030 해상풍력 12GW 달성’ 목표와 연계해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의 원리와 장점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은 원리적으로 보면 ‘풍력발전 → 전기생산 → 물 전기분해 → 수소 생성’의 순서를 따릅니다.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바다 위 혹은 해안 인근 수전해 설비에 공급해, 물을 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수소는 고압 저장되거나 액화되어 육상으로 운송됩니다. 기존의 전력망을 거쳐 전기를 육상으로 송전하던 방식과 비교해볼 때, 해상에서 직접 수소를 생산함으로써 송전 비용, 전력 손실, 설비 부하 등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수소는 에너지 저장이 가능하다는 특성 덕분에, 풍력처럼 출력이 유동적인 발전원과 매우 궁합이 잘 맞습니다. 풍속이 강할 때는 수소 생산량을 늘리고, 풍속이 약할 때는 저장된 수소를 활용함으로써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즉,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린수소는 수전해 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수소차·수소발전·수소항공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도 탄소중립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국내 실증 사업과 정부 정책 방향
한국은 2024년부터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 기술을 본격적으로 실증하고 있으며, 주요 프로젝트는 전남 신안, 울산 앞바다, 제주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라남도 신안 지역에서는 8.2GW급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이 전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 클러스터 구축이 병행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한국전력, 두산에너빌리티 등은 해상용 수전해 설비 및 수소 저장 기술 개발을 공동 진행 중이며, 2027년까지 상업 운전이 가능한 해상 수소 생산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3년 말 발표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2.0’에서 해상풍력과 연계된 그린수소 생산을 핵심 과제로 포함시켰습니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량을 연간 25만 톤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을 해상풍력 기반으로 충당할 예정입니다. 또한 해상풍력단지 내 플로팅형 수전해 모듈(부유식 수소 생산 설비)를 실증하는 기술 개발도 병행되고 있으며,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설치 및 유지관리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부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수소 저장, 운송, 인허가 간소화 등 제도적 지원도 확대하고 있어, 민간 기업들의 진입 장벽도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국제 동향과 글로벌 기술 경쟁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유럽 국가들이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북해를 중심으로 대규모 해상풍력 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2030년까지 북해에 10GW 규모의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단지를 구축하겠다는 ‘HyLink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수소는 유럽 전역으로 송출할 계획입니다. 노르웨이는 해양 플랫폼 건조 경험을 살려 해상 부유형 수소 생산 플랫폼 기술을 집중 개발 중이며, 이 기술은 향후 원거리 해상 풍력단지에 적용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도 후쿠시마 앞바다에 설치한 부유식 해상풍력단지에서 수소 생산 시범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소 수입국에서 생산국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해상풍력 기반 수소 시장은 2035년까지 연간 4,000만 톤 이상의 수소 생산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현재 전 세계 수소 소비량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따라서 기술 선점과 시장 진입 속도에 따라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KOGAS(한국가스공사), SK E&S, 포스코에너지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과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기업은 유럽 해상풍력 기업과의 합작 투자 또는 기술 제휴를 통해 글로벌 협력체계도 구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과제와 지속가능한 수소 생태계 구축 방향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이 장기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해상 수전해 설비의 내구성과 해양환경 적응성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바닷바람, 염분, 조류, 파도 등의 자연조건은 수소 생산 설비의 부식과 마모를 가속화할 수 있으므로, 이에 적합한 재질과 설계 기술이 필요합니다. 현재 일부 기업에서는 내염성 재질을 사용한 전해조 설계를 도입하고 있으며, 설비 안정성 확보를 위한 부유식 플랫폼 기술도 병행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소 저장 및 운송 체계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미흡합니다. 해상에서 생산된 수소를 육상으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고압 기체 상태의 튜브트레일러, 액화수소 운반선, 암모니아 또는 메탄올로 변환 후 운송 등의 방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각 방식마다 기술적 과제와 경제성이 상이합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 운송 다변화 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해상용 액화수소 운반선의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실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 확보입니다. 현재 해상풍력의 발전 단가는 육상보다 높고, 수전해 설비 구축 비용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전체 수소 생산 단가가 kg당 5~8달러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상업화 단계로 진입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향후 기술 발전과 대규모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다면, 2030년 이후에는 그린수소 단가가 kg당 2~3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보조금, R&D 투자 확대, 민간 공동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병행하고 있으며, 민간 기업들도 투자 회수 기간을 고려한 장기 수익 모델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결론: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은 미래 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
해상풍력 기반 수소 생산 기술은 단순한 에너지 기술의 진보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 구조 재편과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바다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탄소 없는 수소를 만들고, 이를 저장하고 운송하여 다양한 산업에 공급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수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이 기술은 수소차, 수소선박, 수소비행기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 가능하며, 특히 수소 기반 발전소와 산업 공정에도 적용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정책, 기술, 투자 모두가 이 방향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으며, 해상풍력과 수소의 융합은 그 중심에 있습니다.